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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라고 하는데 그 목소리가 총을 맞은 사람같지 않더라고 밝혔습니다. 또 한참 있다가 다시 부축하며 '정말 괜찮아요'라고 물었을때도 '나는 괜찮아'하며 버티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후 심수봉은 1주일동안 조사를 받느라 여기저기 불려다녔다고 합니다. 조사가 끝나자 그때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불러 가보니 금일봉을 주면서 '고생했다. 보약이나 지어 먹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시 심수봉은 전두환에 대해 무척 자상한 분이라며 감동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심수봉의 방송출연정지조치는 전두환의 뜻이었던 것으로 이후 전두환에 대한 원망도 많았다고 합니다. ㅋㅋ전북에서 전북사람들 호응할만한 사람





함께 기도하자”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이던 지난 1975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유신 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이 커졌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유신헌법 재신임 투표를 추진했다. 그해 4월9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고인들을 사형선고 20시간 만에 사형에 처하는 등 인권탄압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위기가 커지자 6월 22일 개신교 보수세력이 중심이 돼 서울





하던가요?"라는 질문함 ㅋㅋㅋㅋ 그 뒤 잠시 표정관리 못하는 전두환 아들 ㅋㅋㅋ 째림 ㄷㄷ ~ 얼른 자리피해 갔음 ㅋㅋ 잊을만 하면 올라오는~ 다까끼 마사오 세뇌탈출 프로젝트~ 박정희 개새끼가 경제를 살렸니.... 우리나라 근대화를 주도했다느니... 하는 개소리가 있어서 그의 업적(?)을 정리해봄.... -프롤로그- 우선 근대사의 비밀(?)아닌 비밀이 나오게 된 배경은 1978년 10월 31일에 미국의회에 제출된 프레이저 보고서다. 이는 박정희의 최측근이었던 강형욱이 1977년 미국 청문회에서 모두 폭로하고 살해됨으로써 정리가 가능했다. 박정희는 당연히 사실무근이라고 국민들을 속였다. 그 이후 김재규에





빼낸 후, 돈을 줘서 만든 게 중앙일보 입니다. 현재 중앙일보는 홍씨네 소유로 알려져 있지만, 기실 아직도 삼성 이씨네가 주인입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이건희의 지분을 홍씨 명의로 위장해놓고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라고 폭로했었죠. 재밌는게, 홍진기가 장관으로 있으면서 폐간시켜 버린 경향신문 입니다. 경향신문은 나중에 부활했고, 홍진기는 중앙일보를 차렸으니, 두 신문은 악연이 깊습니다. 홍진기 는 단순히 이병철 의 얼굴마담이 아니라 (친일파)기득권 세력의 한 축이었는 데, 자신의 자식들을 여기저기 시집보내





유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어이 성공시켜야 하겠다” 독재자들을 축복했던 조찬기도회도 개신교의 극우화와 권력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만든 고 김준곤 목사가 제안해 1965년 시작한 국회조찬기도회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68년 열린 첫 공식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김준곤 목사는 박정희를 향해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 목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고 말했다. 김





대해 최대의 관심을 기울인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기도회를 추진했다. 22일 열린 기도회에서 한경직 목사는 대회사를 통해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지금 남침야욕에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나라 없이는 신앙도 자유도 재산도 모두 잃게 되므로 자유 민주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깨어나 함께 기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그해 6월22일 개신교 보수세력이 중심이 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40만 명이 모여 ‘나라를 위한 기독교 연합 기도회’를 열었다. 당시 기도회를 보도한 6월23일자 동아일보 기사 ⓒ기타



영화 노트 “1980년 정권이 교체되던 시기, 고도의 성장 속에서 발생한 사회적 모순을 소외된 젊은이들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낸 블랙 코미디의 수작” 사회구조 모순과 계급의식을 드러낸 영화 은 고속성장의 이면에 빈곤과 소외가 공존했던 사회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던 바로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이장호 감독은 활동이 정지된 4년간 농촌문학에 심취했으며,





기소를 하지 않으면 재판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되었다. 더군다나 기소를 유예하도록 검사에게 청탁을 하고 나중에 그 검사가 어떤 부탁을 하면 나도 기소를 하지 않는 식으로 주고받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중학교때 일진과 싸운 친구 때문에 매일 100원씩 뺏기던 힘없는 아이들 중에서 열외를 받았던





예전처럼 아무소리 못하고 당하진 않잖아요?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면 더 바뀔거예요. 저도 조국 장관 사퇴소식에, 알릴레오 법조팀 사건 재구성을 들으며 이렇게까지 서로 밀어주는구나...싶어 좀 진저리나고 지치기도 했는데요 그래도 우리는 저들보다 더 강하고 끈질깁니다. 아시아 국가에서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룬 국가가 또 있나요? 수십년간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모여 여기까지 왔죠. 여기에 조국장관과 그





최근 SNS에서 왜 꼭 조국 장관이어야 하나 이해를 못하겠다는 의견들을 종종 보았다. 정경심 교수가 14명의 변호인을 선임했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기득권 층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사회의 역사적 정치적 흐름이 없이 표면적인 사실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 대한민국 검찰 전체가 거의 두달째 조국 가족을 물고 늘어지고 있는데, 변호사 14명이 대단한 기득권으로 보이는 시각을 뭐라 이해해야 할까? 왜 꼭 조국 장관이어야 하나라고 묻기 전에, 왜 자한당, 언론, 검찰이 모든걸 걸고 마녀사냥과 가족인질극으로 조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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